Julia_Wise

이 글은 약간 수정되었다. 원 글은 여기서 볼 수 있다.

사람들이 효과적인 이타주의 행사에 처음 참석하면 대부분 대화가 자신들이 추구하고 있는 프로젝트나 기부를 하고 있는 자선단체로 쏠리게 된다. 게다가 사람들에게서 마치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철저하게 비용 효율성의 잣대의 기준으로 보고 있는 것과 같은 약간의 긴장감이 느껴진다. 물론 이 점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효과적 이타주의를 지지하는 많은 젊은 사람들이 실제로 삶에 있어 모든 면에 비용효율성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으므로 이해는 된다.

비용효율성 분석은 매우 유용한 도구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과 기관들이 보다 많은 문제들에 이를 적용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여타의 도구와 같이 이 역시 삶의 모든 측면에 적용될 수 없다. 당신이 하는 모든 일들이 이 “효율성”의 대상은 아닌 것이다. 사실 모든 것에 효율성이 적용되는 상황은 상상조차 어렵다.

나는 많은 목표가 있다.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들려는 목표가 있다. 내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는 목표도 있다. 나는 또한 좋은 배우자가 되고 싶다. 그리고 내 친구들 및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고자 하는 목표도 있다. 이들은 모두 중요한 목표이지만 모두 같지는 않다. 나는 내 시간과 돈을 어떻게 나누어 써야 하는지 대략적인 계획이 있다. 예를 들어 일요일 아침은 내 아이들을 위해 팬케이크를 굽는 데 쓴다. 월요일 아침은 일에 할당해 두었다. 내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내 일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쓴다거나 내 아이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록 하는 방식으로 내 일을 하는 것과 같이 이 두 활동을 뒤섞어 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

내가 만약 내 친구의 병든 삼촌을 위해 친구가 모금을 하는 데 기부를 한다면 나는 목표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내 친구와 우리의 우정”을 위한 것이지 “세상을 가능한 한 좋게 만들겠다”는 나의 목표는 아닌 것이다. 결정을 내릴 때에는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명료하게 해 두는 것이 낫다. 내가 이 돈이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쓰이지 않는다고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그 기부의 목적이 아니었다. 그 돈은 친구들과 만나서 마시는 커피값과 같이 내 “개인적인 만족”을 위한 예산에서 지출되는 것이다.

나는 가능한 한 효과적으로 기부하기 위해 따로 떼어놓은 돈이 있다. 내가 그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할 때는 나는 비용효율성을 최우선에 두고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큰 효과를 내도록 노력한다. 여기에는 다양한 개입 활동에 대한 연구들을 살펴보고 불필요한 고통, 질병, 그리고 죽음을 줄이기 위한 우리의 노력에 인류애를 불어넣는 데 가장 많은 공헌을 한다고 생각하는 연구를 고르는 것도 포함된다. 내가 찾은 가장 좋은 명분은 대체로 전에 나와 개인적인 연관성이 전혀 없고 내 사생활과도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경우가 많다. 개인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내 목표는 아니므로 이것도 좋다. 물론 나중에 이 결정에 대해 개인적인 의미를 찾겠지만 이것이 내가 그러한 결정을 내리도록 유도하는 것은 아니다.

결정을 내릴 때에는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분명히 하자.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면 자신이 한 선택이 최선인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지역 예술 단체가 당신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 때문에,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싶어서, 또는 그들이 당신이 전에 도와줬기 때문에 이를 갚기 위해서든 어떠한 이유에서건 그 단체를 지원하는 것도 좋다. 세상을 당신이 할 수 있는 한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들려는 목표도 가지고 있다면 어느 정도의 시간과 돈을 이 목표에 투자하고 싶은지 결정하고 주어진 자원을 가능한 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