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경제학에서 아주 오래 전부터 언급되어온,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어느 변호사가 한 시간 더 근무해 번 돈으로 무료 급식소에 기부함으로써 일손을 더 얻도록 하는 대신에, 급식소에서 한 시간 동안 봉사활동을 한다는 게 그 대략적인 내용이다. <중략>
만약 무료 급식소에서 한 시간 봉사활동을 한 경험이 변호사에게 좋은 동기 부여가 되고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이유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차라리 변호사 일을 해서 번 돈의 일부를 추가로 기부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이 선택이야말로 전문직 종사자가 지닌 힘, 그리고 현실적인 어른들의 세계에서 효율을 내는 방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기부행위를 무료 급식소에서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구매하는 것으로, 혹은 무료 급식소에서 보낸 시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나는 체구가 아담한 할머니와 마주쳤을 때 문을 잡아드리곤 한다. 마지막으로 도와드렸던 때가 언제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어렴풋이 작년 즈음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만약 한 달쯤 전에 나선 산책길에서 트렁크가 활짝 열려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이는 차를 봤다고 치자. 혹시 차주가 짐을 옮기는 중인가 싶어 트렁크 내부를 살펴봤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주위에 자동차를 손보던 사람이 있을까 싶어 둘러본다. 결국 그 집 현관문을 두드리고 초인종을 누른다. 알고 보니 실수로 트렁크를 열어 둔 게 맞았다.
다른 맥락에서 이는 단순한 이타적 행위일 수 있다. 진정으로 타인의 안녕을 걱정하는 마음, 혹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경우 느낄 죄책감, 스스로 혹은 타인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이란 인상을 주고 싶은 욕구, 이타주의를 통해 느끼는 기쁨을 반영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타인의 안녕을 걱정했기 때문이라면 추가 점수를 줄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굳이 점수를 깎을 필요는 없다.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아무렴 어떠랴.
하지만 이미 비영리 분야에 몸담고 있는 나는, 타인에게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전문화된 방식으로 그 60초를 사용할 수는 없었는지 자문하게 된다. 내가 지닌 신념에 비추어 봤을 때, 내 시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가장 확실한 자기 변호, 혹은 분명한 자기 합리화를 해보자면, 차주에게 트렁크가 열려 있다고 알려주는 것과 같은 이타주의적 행동은 가령 그냥 음악을 감상하는 행위보다는 훨씬 더 효과적인 의지 회복제 역할을 한다. 또 행동은 하지 않으면서 생각으로만 이타주의자가 될 수 있다고 나 스스로 믿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만약 어떤 문제를 보고도 그냥 지나쳐버린다면 내 이타심은 이내 사라져 버릴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내 의심을 실험해볼 만큼 상황을 극단으로 끌고 가본 적은 없다. 그 위험을 감수할 만큼 가치가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 변호를 위한 행동을 두고 진정한 선행이라 주장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그 행동이 결국 자신을 위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내가 이 행위를 온전히 이타적인 선행으로 변호하겠다는 말은 앞에서 하지 않았다. 그렇다. 내 행동은 결국 ‘이기적’ 선행이다. 그러나 이로써 자기 의지를 다잡거나 스스로 이타심을 유지할 수 있으며, 타인에게 간접적으로나마 도움 줄 여지도 충분히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물론, 타인을 위한 행동이어야 하는데 그 이면에 ‘이기적인 저의’가 깔려 있어 신뢰하기 어렵다고 반론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나는 이와 똑같은 논리로 이렇게 되묻고 싶다. 그 선행 이면에 있다고 추정되는 저의에 주목하기보다 본래의 선행 그 자체에 주목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게 그렇게 단순한 일일까? 그러니까, 내 행동을 ‘이기적 선행’으로 생각하고 이기적인 행동을 했다는 죄책감은 느끼지 않은 채 결과적으로 의지 회복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걸까? 누릴 수 있다. 놀랍지만 정말로 그럴 수 있다. 내가 트렁크가 열렸다는 사실을 차주에게 알리고 차주가 내게 고맙다고 한다면 내 뇌는 하루치 선행을 훌륭하게 해냈다고 느낄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하루치 선행의 기준이 다를 수는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마다 의지를 회복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보편적인 룰을 찾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 (물론, 현재로서는 그 다름의 범위를 예측하는 공식을 심층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표면적인 현상만 수박 겉핥기식으로 탐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기적 선행이 그래도 의미 있다고 나처럼 생각한다면, 뿌듯함과 효용성은 한데 묶어 구매하지 말고 따로따로 구매하는 것을 추천한다. 뿌듯함과 효용성을 한 번에 잡으려 한다면 결국은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사회적 지위도 중요하다면 역시 따로 구매하는 것이 좋겠다.
만약 갓 억만장자 반열에 올라 자선 분야에 입성한 사람이 내게 조언을 구한다면 다음과 같은 가이드라인을 줄 것이다.
뿌듯함을 구매하고 싶다면 성실하게 살아도 살림이 여전히 넉넉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남편 월급마저 줄어 국립단과대학마저 그만둬야 할 처지에 놓인 여성을 찾아 익명이지만 직접 10,000달러를 입금해주고 이런 행동을 원하는 만큼 반복하면 된다.
친구들의 인정을 얻고 싶을 땐 현재 가장 핫한 엑스프라이즈(X-Prize) 대회 아니면 최소의 금액으로도 주변에 티를 팍팍 낼 수 있는 자선단체를 찾아 100,000달러를 기부해보자. 그리고 최대한 요란하게 호들갑을 떨며 언론 행사에 꼬박꼬박 참석하고 앞으로 5년 동안 자랑하면 된다.
그런 다음, 규모에 대한 둔감성(scope insensitivity)이나 모호성 회피(ambiguity aversion), 사회적 지위나 뿌듯함에 대한 생각은 미뤄두고, 냉철하고 철저하게 계산해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한 결과를 효용성으로 전환할 수 있는 보편적인 공식을 구하고, 불확실성을 백분율로 표현하는 방법을 찾아 달러당 최대의 기대 효용성을 제공하는 자선 단체를 찾는 것이다. 그렇게 선정한 자선단체의 한계 효율이 그 다음 순위에 있는 자선단체의 그것 아래로 떨어질 때까지 기부하고 싶은 만큼 마음껏 기부하면 된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효용성을 구매하는데 지출하는 금액은 뿌듯함을 구매하는데 지출하는 금액의 최소 20배 정도 돼야 한다. 이타심을 유지하는데 드는 간접비로 5% 정도면 적당할 성싶다. 이렇게만 한다면 나는 냉철한 심판의 눈으로 당신이 느끼는 뿌듯한 마음을 이렇게나 큰 승수로 충분히 입증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여기에는 본래의 뿌듯함을 얻기 위한 행동이 반드시 도움되는 행동임이 전제되어야 한다.
(나는 지위를 구매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이타주의와 무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스피드보트를 구매하는 대신 얼추 그와 비슷한 금액을 엑스프라이즈에 기부해서 친구들이 당신을 더욱 존경하게 만든다면 스피드보트를 구매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본다. 그 돈을 친구들의 존경심을 얻는 데 필요한 예산으로 잡고 이게 이타주의 항목엔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만 인지하면 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뿌듯함, 사회적 지위, 기대 효용성 세가지를 따로 구매한다면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교훈이다. 즉, 각각에 최적화된 방식으로 하나씩 구매하는 게 좋다는 뜻이다. 가령 천만 달러를 파티 비용으로 지출하지 않고 유방암을 위한 자선단체에 기부했다면 응당 칭찬받아 마땅할 일이지만 직접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주는 경우 따라오는 응축된 농도의 희열감은 느끼지 못할 것이다. 아마 비교조차 불가할 것이다. 물론 엑스프라이즈처럼 이목을 끌만한 매력적인 사업을 후원할 때보단 파티에 가서 자랑할 거리가 없을 수는 있다. 다른 부유한 사람들에게 가볍게 인정받는 정도는 될지도 모르겠다. 뿌듯함과 사회적 지위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면 현재 충분히 지원받지 못하고 있지만 같은 천만 달러의 돈으로 더 큰 효용성을 담보해줄 자선단체를 천 군데는 족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번에 세 조건 모두 만족시키려면 그 어느 하나도 제대로 못하는 상태가 되고 세 조건 모두 어설프게 흉내만 내다 만 꼴이 된다.
물론 여러분이 백만장자도 억만장자도 아니라면 벌크로 구매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고 큰 효율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도 뿌듯함 정도를 얻고자 한다면 밝으면서도 명확한, 이상적인 경우엔 대면으로 직접 만날 수 있는 그런 수혜자와 연결해주는 상대적 금액 부담이 적은 자선단체를 찾아볼 것을 권한다. 무료 급식소에서 봉사활동을 할 수도 있겠다. 아니면 연로하신 할머니들을 위해 문을 잡아드려도 된다. 효용성을 구매하기 위한 다른 노력을 통해 이러한 행동의 정당성을 얻되, 이걸 효용성을 구매하는 것과 혼돈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좋은 옷을 사 입는 것이 사회적 지위를 얻는 가성비 좋은 방법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리고 기대 효용성을 구매할 기회가 오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곱해라. 그러면 된다.